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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곰 토템

  • 작성자전체관리자
  • 작성일2017-04-27
  • 조회수1050

 

공주의 곰 토템 (totem)

 


 


금강이 굽이쳐 흐르는 곰나루에 있는 웅신단(熊神壇)은 조선중기까지 국가에서 수신제를 모셨던 것으로 알려진 곳이며 공주(公州)라는 지명(地名)의 연원이 되는 고마나루에 위치하고 있다.


 

고마나루는 또 애틋한 곰녀의 전설로부터 기원하였다. 어쩌다 사람을 사랑하여 그것으로 인해 비운의 종말을 맞이한 암곰의 애틋한 설화는 사람들이 그 설화 속의 곰을 대상으로 웅신단을 만들고 제를 지내니 비로서 설화 속의 곰은 이곳의 신이 되었다.



 


고마구마는 곰의 순수한 우리말로 부른 옛 이름으로, 한자로 표기하기 전까지는 공주를 일컬어 고마나루라 하였는데, 지금은 순수한 우리말로 곰나루라고도 한다. 이 고마나루는 공주의 서쪽에 있는 금강나루와 그 강변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에는 공주에서 청양, 예산 등 서쪽 방면으로 가거나 그 방면에서 오는 경우는 반드시 이 나루에서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 했다고 한다.


 

고마나루가 있는 지역은 금강이 공주를 관통하여 서로 흐르다 급히 남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는 지역으로 물살이 세고 험하여,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 등 이곳을 건너려는 사람들이 잦은 사고를 당하였는데, 사람들은 그 이유를 수신이 노하여 그런 것이라 하여 곰의 설화를 원용(援用)하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이후 곰의 원혼을 달래어 더 이상의 사고를 막고자 하니, 공주의 민간 신앙으로 자리 잡는다.


 

공주라는 지명의 연원이 된 고마나루에 전해지는 곰녀의 전설의 대강은 이렇다. 강 건너 연미산 자락 끝 굴에 살던 암곰이 어쩌다 사람을 사랑하여 자식까지 낳고 수년을 살았으나, 곰녀(암곰)와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배를 타고 강 건너로 가버린 사내를 애타게 부르다 지쳐, 자식과 함께 강물 속에 몸을 던져 죽어갔다는 곰녀의 슬픈 전설이다.


 

송림의 중간쯤, 강가쪽으로 끝나는 지점에 곰녀의 혼을 달래려 비와 단을 세웠는데, 이름 하여 웅진수신지단(熊津水神之壇)이다. 이곳은 금강이 서(西)로 흐르다 갑자기 남()으로 방향을 바꿔 흐르는 곳으로 그래서인지 웅신단 아래쪽에 백사장이 잘 발달되어 있고, 강 건너 연미산 끝자락은 굽이치는 물줄기를 맞느라 모래톱마저 없다. 먼발치에서 웅신단을 바라보니, 전설 속의 곰녀가 앉아 나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듯 애틋해 보인다.


 

전에는 강둑이었으나 공주에서 부여까지 시원스레 뚫린 백제대로가로 발길을 돌려 비석과는 반대편 부여방면인 송림 끝에 자리 잡은 웅신단(熊神壇)이 있다. 자그마한 뜨락이 있는 웅신단에는 고마나루에서 발견된 돌곰상이 모셔져 있다.


 

한편 강가의 웅진수신단비는 글자 그대로 백제의 웅진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라진 백제의 고혼을 달래기 위해 조선 중기까지 수신제를 모셨다는 것이 정설이며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곰나루에 얽힌 설화와 주민의 증언에 의헀다.

 

 

 

 

단군신화 이래 곰 토템(totem)에 익숙한 우리의 정서가 서린 고마나루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백제의 고혼과 설화 속 곰의 원혼을 달래는 살아 있는 우리 민속의 현장이자 공주 지명의 연원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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