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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미즘과 공주의 민속 I

  • 작성자전체관리자
  • 작성일2017-02-21
  • 조회수2006

 

1. 영화 단적비연수


 

아주 먼 옛날. 태고의 신이 지배하던 신산(神山)아래 매족과 화산족 두 부족이 살고 잇었다. 어느 날 매족은 천하를 얻고자 화산족과의 전쟁을 일으켰고, 화산족이 숭배하던 신산은 재앙을 내려 매족의 과욕을 벌하엿다. 그 후, 모든 것을 잃고 척박한 곳으로 쫓겨난 매족은 부족의 원수 신산과 화산족을 응징하고자 살아 잇는 사람 일천 명의 피와 뼈를 녹여 천검을 만들었고, 그 완성을 위해 화산왕족 후손의 피가 필요했다. 천검이 완성되려면 또 한 가지. 자연현상인 개기월식 때 화산왕족의 피를 바쳐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매족의 족장 는 화산족의 왕 을 유혹하여 화산족 왕족의 씨를 잉태하게 된다. 수는 한을 사랑하여서가 아니라 화산족 왕족의 피가 필요하여 그 피를 얻기 위한 결과였다. 어느 날 수는 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한을 죽이려 하지만 한의 역습을 받게 된다. 한의 의지에 다라서는 단칼에 절명할 수 있는 상황. 수는 위기에 굴하지 않고 한에게 뱃속의 아이를 찌르라고 재촉한다. 망설이던 한은 복수를 맹세하며 어디론가 떠나간다.




 

마침내 수는 한의 아이를 낳게 된다. 수가 잉태한 한의 아이는 (최진실 역)’. 비가 태어나는 날은 매족이 울려퍼지는 북소리와 그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주문을 외는 제사장. 그의 주문을 따라 외는 매족의 군사들. 이 때 갑자기 어디선가 빛이 날아와 병사들의 목을 자르고 가슴을 관통하여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간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살인의 빛은 제단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마지막 빛은 제사장을 향해 정면으로 치닫는다. 이 때 흔들리지 않고 빛에 맞서는 제사장의 코앞에서 빛은 사라지고 만다. 천검이 준비된 것이다.


 

신단에서 제가 시작되고 빛이 병사들의 피와 뼈를 녹여 천검을 준비하는 장면과 장면 사이사이 족장 수가 자신의 처소에서 홀로 난산의 산고를 겪은 끝에 비를 낳는 장면 등이 숨가쁘게 전환되며 운명의 날의 긴박함을 알리고 있다. 아이의 탯줄을 스스로 끊고 수는 핏덩어리인 수를 안고 제단으로 향한다. 수가 비를 안고 나타나자 살아남은 병사들이 환호하고 제사장은 안도한다. 달은 어둠에 가려 월식의 절정에 이른 무렵 비는 제단에 놓여지고, 천검을 빼어든 수는 비를 찌르려 하는데, 이때 갑자기 한이 말을 타고 나타난다. 수가 막 칼을 비에게 내리치려는 찰나였다. 수는 개의치 않고 비에게 칼을 내리친다. 그 순간 비는 말을 타고 달려든 아버지 한의 품속에 안겨지고 수가 내리친 칼날은 제단을 두동강이 낸다. 비를 안고 달아나던 한은 뒤돌아서며 수에게 꼭 복수할 것을 다짐하며 매족의 제단을 떠난다. 수는 매족의 병사들에게 비를 반드시 잡아 올 것을 명령하기에 이르고 한과 비, 매족의 쫓기고 쫓는 혈투는 10여 년을 두고 계속된다.


 

화산족의 마을 부근에 이르러 매족의 병사들에게 발각된 한과 비는 매족의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잡혀가는 위기에 처했으나 우연히 이를 본 화산족의 청년들에 의해 구출을 받게 괸다. 싸움을 목격하던 화산족 청년들은 쫓기는 자가 화산족이라는 것을 비의 아버지 한의 검법을 보고 알아차린 것이다.


 

비의 아버지는 사랑을 찾아 부족을 버리고 더난 화산족의 왕이었다. 화산족은 부족을 배신한 한을 용서치 않고 10여 년의 꽃김 끝에 돌아온 한을 그길로 돌려보냈으나 한의 청에 따라 비는 자신들의 마을에서 거처하도록 허락한다. 화산족의 원로노파 해아의 허락에 의해서. 해아는 비를 보고 부족의 앞날에 뭔가 영향을 줄 것을 예지하지만, 그것이 좋을지 나쁠지는 미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비는 화산족과 신산을 보호할 수 있는 제물이자 화산족과 신산을 멸망시킬 수 있는 제물의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생명이었다. 신산은 비를 자신에게 바치라고 화산족의 마을에 지진을 일으키고 가축을 죽여 피바다를 만드는 등 작은 재앙을 내려 화산족에게 위기를 경고한다. 그런 끝에야 해아는 비를 신산에 바쳐야 신산과 화산족이 무탈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을 깨닫고 비로 하여금 신산의 경고를 스스로 고백하게 한다. 이때 해아는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으로 비를 인도하고 신산의 뜻을 스스로 전하게 한다.


 

비는 어렴풋이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지만 해아를 통해 확실히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었고 화산족과 신산을 위해 스스로 재물이 되려 월식이 이루어지는 운명의 날 3일을 남기고 신산을 향해 길을 떠난다. 비가 신산에 들어가게 되면 천검은 완성되지 못하여 매족은 멸망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 절대절명의 순간들... 영화의 후반부를 숨 가쁘게 장식한다.

 

 

 

 

2. “정령숭배(精靈崇拜-spiritism)”와 영화 단적비연수


 

영화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한다. ‘정령숭배에 대한 얘기를 하려다가 서론이 너무 길었다. 2000년 김석훈, 설경구, 최진실, 김윤진, 이미숙 등 호화 배역진이 출연한 은행나무침대의 속편 단적비연수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고대로 칼과 종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선사 이후의 시대쯤으로 상식선에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시대적 설정과 그것이 선사시대든 고대시대든 간에 논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신산과 제사장이 등장하고 그것을 믿고 따르는 부족들에 관한 설정이다.


 


 

허구에 불과한 영화의 예를 굳이 드는 것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함이고 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 자체는 정령숭배에 관한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짐승의 혼령 또는 산천초목 따위의 정령이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 화를 피하기 위하여 이를 숭배하던 원시종교의 한 형태정령숭배에 관한 사전적 의미이고 정령이란 원시종교에서 산천초목, 무생물 따위에 붙어있다고 믿던 혼령으로 역시 사전적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정령숭배는 이 영화에서 신산과 부족을 잇는 해아의 역할과 같이 샤머니즘과도 같이 관계를 갖으며 조상숭배, 자연숭배 등과도 같이 관계를 갖는다는 설이 일반적인 학설이기도 하다. 영화 단적비연수에서 신산의 설정은 고대 사람들이 자연을 부족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고 숭배하던 고대 종교문화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러한 의식은 선사시대부터 유래되어온 원시신앙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선사시대에 관한 고고학 연구는 유물과 지층 분석에 의존하여 추론을 거쳐 그 비밀을 밝혀낸다. 선사시대는 문자가 없었던 시대였던 만큼, 정신활동과 같은 무형의 것은 사실 확실한 근거에 의해 확인할 길이 없다. 그때의 사람들에게 정령신앙이나 샤머니즘적 종교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그 때의 매장 관습이나 벽화를 두고 추론할 뿐이지만, 고고학자들이 밝혀낸 여러 가지 정황적 근거와 유적·유물로 보아 정령신앙이나 샤머니즘이 계급발생 이전 시대와 식량의 수렵·채집 단계에서 생성하고 발달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며, 정령신앙이 발전하여 샤머니즘의 종교현상으로 발전하였다는 설도 학계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 정령숭배의 양태로서 대표적인 계룡산 산신제에 대해 알아본다면 에니미즘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3. 계룡산산신제



 


계룡산은 천왕봉이 가장 높다. 천왕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뻗어나간 많은 봉우리 중 연천봉은 명성왕후가 아들을 낳기 위해 사람을 보내 제단을 만들고 기도하여 태자를 얻었다는 사연이 전해지는 곳이다. 지금도 연천봉 정상에 가면 제단이 남아있으며 기도를 위해 정상을 오르는 사람 들이 자주 눈에 띈다.


 

또 연천봉은 국보 1점과 보물 1점을 품고 있다. 연천봉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아담한 절집 신원사의 국보1299호 신원사노사나불괘불탱(新元寺盧舍那佛掛佛幀)이 그것이며 신원사 가람배치의 일부로 착각할 만큼 인접해 있는 보물1293호 중악단(中嶽壇)이 그것이다.


중악단은 조선시대에 국가 안위를 위해 제를 지내는 곳의 하나로 북쪽으로 묘향산(상악), 남쪽으로 지리산(하악)과 함께 산신에게 제사를 내는 곳이다.


 

조선 오악의 하나인 계룡산 중 현재의 자리에 중악단이 세워지게 된 것은 계룡산에 머무르고 있던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1394)에 현재의 중악단을 창건한 것에서 유래된다. 중악단은 계룡산사(鷄龍山祠), 계룡단(鷄龍壇)등으로 불리워 오다가 효종 2(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으나 고종 16(1879) 명성황후의 명에 의하여 재건되고 그때부터 중악단이라 하여 지금까지 그 명칭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의 나라라고 할 만큼 산악지형이 발달되어 있다. 자그마한 마을 뒷산부터 고준영봉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산들. 이 때문에 산악신앙이 우리민족 토속신앙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 옛날 마을 가까이 산에 호랑이가 살던 시절, 마을사람들은 호랑이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면 산신이 노한 것으로 여기고 산신제를 지냈다. 도시화로 인해 우리의 전통 민속이 사라져가는 요즘에도 산신제를 지내는 마을이 많아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가까운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민중 속의 산신과 개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나라가 위태해지면 산신이 노한 것으로 여겨 제를 지내고 태평성세라 할지라도 산신이 보살핀 덕으로 여겨 제를 지내는 풍습은 민중과 국가의 차이, 제의 형식과 규모 차이 외에는 없는 듯 하다


국가가 산을 산신이 사는 성산(聖山)으로 여겨 제를 지내는 풍습은 중국의 오행사상(五行思想)에서 비롯된 오악(五嶽)개념으로 나라의 수호신(守護神)이 거처하고 있는 곳으로 믿어 성산을 정하고 국가의 안위를 비는 것에서 비롯된다. 오악은 신라, 고려, 조선 등 각 시대에 따라 다르며 계룡산은 신라, 조선이 오악중의 하나로 삼았다. 조선의 상악단, 중악단, 하악단 중 상악단과 하악단은 멸실되었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중악단이다.




 

지금도 중악단에서는 매년 산신제를 치른다. 중악단의 산신제는 조선시대에 유교식으로 치러지다가 효종 2(1651)에 폐지됐으며 고종 16(1879) 명성황후가 재건하여 불교식으로 봉행하던 계룡산신제는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다가 1998년부터 유··무 세 가지 형식으로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이처럼 중악단에서 치러지는 산신제는 세월의 변천에 따라 그 제의식의 변천이 있었으며 제의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는 과정을 거쳤다.


 

나라에서 축문과 향을 받아 공주향교가 주제해온 국행제(國行祭) 였던 계룡산신제는 97년 충청남도와 공주시가 주최하고 공주민속극박물관이 주관하여 학술심포지움을 열고 제례에 대한 고증을 거친 후 98년부터 성대한 공주시의 민속축제로 변모하였다.


 

계룡산 중악단에서 치러지는 계룡산신제는 유교식과 불교식, 무가식 등 세가지 형식으로 치러지는데 매년 3월 보름(15)을 기준으로 가까운 금, , 일요일 3일간 치러진다.


 

산신제 하면 대개 엄격한 유교식 제를 상상하고 보아왔을 것이다. 보기 드문 불교식과 무가식의 산신제를 함께 볼 수 있는 계룡산신제에 간다면 산신에 관한 우리민속의 실체를 원형 그대로 다양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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