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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공주로의 수학여행 1박 2일- D코스

  • 작성자전체관리자
  • 작성일2015-06-08 18:03:13
  • 조회수4028

백제 웅진시대의 유적 유물과 함께하는

공주로의 수학여행 1박2일 - D코스


첫째 날 국립공주박물관->무령왕릉->점심식사(백미고을)->공산성->석장리박물관->추천 숙박지: 동학산장(여장풀기/저녁식사/레크레이션/장기자랑/숙박/아침식사)->둘째 날 동학사(동학사계곡 길/동학사/숙모전)->점심식사(동학산장)->상신리돌담풍경마을->계룡산도예촌(도예체험)->귀가




※ 이 코스는 박동진판소리전수관 탐방을 통해 전통국악 판소리에 대한 고찰을 입체적으로 할 수 있다. 명창 박동진선생의 유물과 자료가 망라된 전시관을 관람하고 명창의 현장지도 아래 판소리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속의 전통고찰 갑사를 탐방하면서 역사 속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표충원이 그곳. 갑사의 사우(寺宇)를 이루고 있는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서 싸운 3분의 대표적 승장 서산·사명대사와 함께 영규대사의 영정이 같이 봉안되어 있다. 갑사 표충원과 연계하여 영규대사묘를 찾음으로 임진왜란과 의승장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어서 영규대사의 묘와 사당이 위치하고 있는 계룡뜰자전거마을에서 마을 할머니들이 만들어주신 점심식사를 하고 떡매치기 체험도 하면서 고향의 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다음 우리나라 남한 최초로 발굴되어 구석기유적의 조사·발굴·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역사의 현장 석장리박물관을 탐방하면서 인류의 기원과 우리나라 구석기문화에 대한 학습과 체험을 할 수 있다.


여행대상지 자세히 보기
1. 국립공주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에 마련된 무령왕릉실에 전시되고 있는 무령왕릉의 출토유물은 가히 세기의 대 발견이라 할 만큼 역사, 고고학, 미술사, 문화재적 가치는 지대한 것으로 백제사가 안고 있었던 의문점을 푸는 열쇠가 된다. 출토유물 중 지석의 내용과 삼국사기의 내용이 일치하여 삼국사기의 신빙성을 한층 높이는 등, 백제역사 전반과 67년간 백제 웅진도읍기를 밝히는 타임캡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 더불어 무령왕릉 발굴 이후 공주지역에서 발견되고 출토된 백제의 유적과 유물들은 박물관 2층에 마련된 웅진문화실에 전시되어 고대왕국 백제의 수수깨끼를 풀어주고 있다. 

1971년 7월 5일 송산리 제5, 6호 고분의 침수방지를 위한 배수로 공사중 우연히 발견된 웅진백제시대의 처녀분 무령왕릉 출토 당시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는 무령왕릉실 입구. 사진만 보아도 당시의 놀라웠던 순간이 전해진다.   


무령왕릉실의 중심에 출토당시 연도를 재현하고 왕과 왕비의 목관을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진묘수와 지석이 발굴당시의 모습대로 전시되어 있는데, 지석 위에 올려 진 엽전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오수전』이라는 중국의 동전인데, 무덤이 위치한 땅을 토지신으로 부터 구입한다는 의미로 놓여 진 것이다.

 

  무령왕릉실에 복원 전시되고 있는 왕과 왕비의 목관. 왕릉 입구의 진묘수가 지키고 있는 실체는 바로 영원히 잠든 왕과 왕비다. 진묘수 뒤로 놓여있는 두 개의 관은 일본과의 교역이 활발했음을 나타내 주는 하나의 증거이기도 하다.


금속공예품 전시실왕 관식이다. 관은 피장자의 신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물로 백제지역에는 금제와 은제가 있다고 한다. 이는 중앙집권적 전제 왕권이 완비된 후 의관제의 신분적 규제에 의하여 차이를 둔 것으로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서도 나와 있다고 한다. 무령왕의 왕 관식과 왕비관식은 순금으로 만든 장식, 당시 금속세공기술의 우수성을 잘 말해주고 있는 유물이다.

 


 우리문화체험실. 이곳에는 즐기며 체험할 수 있는 백제역사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기구가 준비되어있다.


2. 무령왕릉(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은 1971년 7월 5일 송산리 제5, 6호 고분의 침수방지를 위한 배수로 공사중 우연히 발굴된 웅진백제시대의 처녀분이다. 발굴결과 부장품 중 지석은 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기록되어 있어 세상 사람들을 크게 흥분시켰다. 지석의 내용은 간단하지만 삼국시대 왕릉 중 피장자의 신원을 확인 하는 유일한 무덤이기 때문. 더불어 이 지석은 삼국사기에 누락된 사실 보충과 삼국사기에 실린 내용의 신빙성을 높였으며, 백제인들의 사상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하는 백제사 연구에 있어 자료로서의 가치도 지대하다.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는 대 발견이자, 사건이었던 무령왕릉의 발견은 웅진백제시대의 타임캡슐을 연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석과 더불어 이곳에서 발견된 왕관과 장신구, 생활용품도 그렇지만, 무덤의 석실 내부를 마감한 벽돌의 제작 수준과 공법은 당대의 우수한 건축기술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어 백제웅진시대의 문화적 우수성도 함께 증명하고 있다.

 

 송산 남쪽자락에 조성된 송산리고분군 전경. 백제 웅진 도읍기에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등 네 왕이 죽었지만 송산리고분군의 무덤은 모두 7기가 확인되고 있다. 무령왕 외에는 다른 세 왕의 무덤은 확인되지 않고 이곳에 그 왕들의 무덤이 있으리라 추측만 할 뿐이다. 이곳이 백제 웅진 도읍기 왕들의 무덤 터가 맞다 면, 7기 중 나머지 3기는 왕족들의 무덤이 아닌 가 추측되고 있다.


 무령왕릉모형관 외경. 무령왕릉은 발굴 이후 일반에게 공개 되어 출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1997년에 왕릉을 정밀 조사한 결과 누수현상 등으로 훼손이 우려되어 원형보존을 위해 영구 폐쇄하게 되었다. 공주시와 문화재청은 무령왕릉폐쇄 후 모형관을 재현하여 관람객에게 전시하기로 결정 하고, 5년간의 공사 끝에 2003년 5월 15일 정식으로 개관한 이후 계속 내부 시설을 업그레이드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굴당시의 무령왕릉을 재현해 놓은 모형관. 유물이 흐트러져 있는 것은 지진의 영향으로 짐작하고 있다.


 역사퀴즈를 풀고 있는 어린이. 백제역사문화와 관련된 주제로 제작된 게임을 즐기다보면 자연스럽게 백제의 역사문화가 가까워진다.


 모형관을 나서면 연도가 동향을 하고 있는 무령뢍릉에 이를 수 있다.



3. 공산성

 

공산성은 백제가 고구려의 공격권에서 벗어나 전열을 재정비하고 패색 짙은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역사의 장으로 5대왕 67년의 백제 웅진사 써내려간 곳이다. 고구려에 맞서 영토를 지키고, 중국과 일본 등 외국과 활발히 교류한 해상왕국으로서 명성을 날렸던 백제. 그러나 475년에 이르러 고구려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도성인 한성이 함락되는 불운을 겪게 된다. 이 전투에서 개로왕이 전사하자, 개로왕의 뒤를 이어 백제 제22대 왕으로 즉위한 문주왕이 한성을 버리고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천도하면서 공산성은 백제의 도성이 된다.
백제 웅진의 67년 도성이 된 공산성은 백제 이래 천년 이상의 세월동안 세월과 시대의 변천을 겪어 온 역사의 장으로 그 세월만큼 역사가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공산성 성내에는 백제 때 건물지를 비롯하여 후기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건물지가 산재해 있다. 조선 인조대왕의 일화가 전해지는 쌍수정 아래 광장은 백제의 추정 왕궁지. 성의 동쪽에 있는 임류각지의 발굴로 성내에 백제왕궁지가 있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무령왕릉 연도를 형상화 한 상징물 사이로 공산성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공산성 금서루 전경. 현재 공산성의 관문역할을 하고 있는 금서루는 공산성의 동문이다. 옛날 성이 성으로서의 역할을 하던 시기는 공북루와 진남루가 주요 출입문이었다.


 공산성 만하루와 연지. 연지 위 누각이 왕과 문무백관들이 풍류를 즐겼을 법 한 상상을 떠오르게 한다.


 공산성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공북루. 배를 타고 도강을 하여 이 문을 지나면 진남문을 거쳐 삼남대로가 이어진다.


공북루에서 공산정으로 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이다. 왼쪽이 연미산 가까이보이는 철교가 625때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고자 폭파했던 금강철교다.


4. 석장리박물관

의식의 여명기를 맞이한 현생인류는 수렵, 어로, 채취 등 획득경제에 의존하여 생활하게 되는데, 주로 강가를 중심으로 그 생활무대를 펼쳤다. 이와 같은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석기시대의 유적 중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 된 곳이 공주석장리의 선사유적이다. 석장리 구석기유적의 발굴은 우리나라에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여러 문화층이 단계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주었으며, 구석기 유적의 조사·발굴·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공주 석장리유적은 평지유적으로 구석기인들이 선호했던 생활환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구석기인들은 주로 나무열매나 뿌리 등을 채집하거나 동물을 잡아서 먹고 살았는데, 이 때 돌을 깨뜨려 만든 도구 또는 동물의 뼈나 뿔을 다듬어서 만든 골각기 등을 사용하였다. 이들 도구의 종류는 용도에 따라 다양하다. 사냥도구로는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등이 있으며, 요리도구로는 긁개, 밀개, 공구로는 새기개 등이 있다. 1990년 10월 26일 사적 제334호로 지정된 석장리선사유적지. 우적 전면에 표석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1990년 10월 26일 사적 제334호로 지정된 석장리선사유적지. 우적 전면에 표석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은 석장리유적박물관 앞에 있는 슬기사람 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탄생으로부터 약 345만년이 지나 현생인류로 구분되는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되는데, 호모사피엔스를 직역하면, “지혜 있는 인간”이란 뜻. 우리말로 슬기사람으로 명명하였다. 이때의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에서 의식(意識)을 획득한 유일한 생물로 현재로부터 약 4~5 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널리 분포하여 중석기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면 인류의 진화과정부터 당시의 삶, 불의 사용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며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수렵·어로 생활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전시물과 디오라마, 자료 등을 통해 선사시대로 빠져들 수 있다. 


동선을 따라 박물관 관람을 하다보면 마지막 전시관에 마련된 체험관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석기시대의 도구 체험과 함께 석기시대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잇다. 사진은 메머드와 코끼리 이빨 모형을 직접 만져보며 당시의 생태계를 살펴볼 수 있다. 구석기인들이 수렵생활을 하면서 어떤 동물을 잡아먹었는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5. 동학사

 

숙소에서 동학사까지 가는 길은 1.6km, 물소리 새소리 벗 삼아 걸으며 매표소와 일주문을 차례로 지나 거의 평지와 같은 길을 산책삼아 걸으며 계룡산의 자연을 보고 느끼는 이 길은 동학사계곡을 따라 난 길이다. 길의 끝에는 천황봉, 쌀개봉, 관음봉, 삼불봉 등 계룡 명봉들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깊은 계곡 아늑한 터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동학사있다.
육중한 팔작지붕의 처마와 부연. 그 아래 화려한 공포. 유연한 배흘림기둥 아래 초석이 연꽃으로 양각되어 기품을 더하는 동학사의 대웅전은 정면 분합문에 새겨진 국화, 대나무, 소나무, 난초, 운학의 문양이 굵고 힘이 있어서 보는 마음 통쾌함 감출 수 없다. 그 옆 문화재자료 제57호 동학사삼성각(-三聖閣 )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으로 단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그리고 대웅전 앞에 문화재자료 제5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동학사삼층석탑(東鶴寺三層石塔)이 세워져 있다.

 

특히 동학사는 세조(재위 1455∼1468)가 단종을 폐위할 때 뜻을 굽히지 않고 절의를 지켜 죽어간 사육신 이하 여러 충신들의 혼을 모셨던 곳인 시도기념물 제18호 계룡산초혼각지(鷄龍山招魂閣址)와 단종(1441∼1457)과 단종의 죽음을 막기 위해 노력한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숙모전(肅慕殿)이 경내에 자리하여 우리 역사의 한면을 돌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불가식과 유가식으로 제를 올리고 있다.동학사 주차장에서 동학사를 향하여 걸으면 기념품가게와 식당가를 차례로 지나고 매표소를 지나면 계룡산의 깊은 계곡으로 빠져들게 된다. 사진은 동학사 사역의 시작임을 알리는 일주문. 주변에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동학사를 500m 정도 앞둔 지점의 동학사계곡. 수 만년이나 수 천년 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너럭바위의 소에 고인물이 투명해서 바닥까지 보인다. 


동학사 주불전 전경. 앞마당에 삼층석탐이 있는 당탑가람 형식의 절이다. 사진의 가운데 대웅전 뒤로 보이는 전각이 삼성각이다.  


 

숙모전은 억울하게 죽은 단종과 사육신, 금성대군을 비롯하여 김종서 등 신라, 고려, 조선의 충절인 280여 위를 배향하고 있는 사우이다. 숙모전은 1456년(세조 2)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사육신의 시신을 김시습이 혼자 수습하여 몰래 장사 치르고 동학사로 돌아와 삼은각 옆에 단을 쌓고 초혼제를 지낸 초혼단이 그 시초이다. 


 

1394년(태조 3)에 야은 길재는 동학사에서 제를 지낸 후 절 옆에 단을 쌓고 고려 태조를 비롯한 충정왕, 공민왕의 초혼제를 지냈다. 그 후 1399년(정종 1)에는 유방택이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의 넋을 기리는 제를 올렸다. 또한 1400년(정종 2)에 공주목사 이정간(李貞幹)이 각을 세웠으며, 길재가 죽자 후학들이 이를 추배하여 세 사람의 호를 따 ‘삼은각’이라 하였다.


6. 상신리돌담풍경마을

상신리돌담풍경마을은 땅을 파면 돌이 나온다 할 정도로 돌이 많은 고장이다. 하다못해 텃밭까지 돌로 담장을 두를 정도로 돌이 많이 나는 이 마을은 산이나 밭에도 ‘흙 반, 돌 반’일 정도로 돌이 많이 난다. 흔한 게 돌이고, 논밭을 개간하면 쌓이는 것은 돌무더기. 이 돌들을 가져다 담을 쌓은 것이 상신리돌담풍경마을의 유래다. 돌담장의 높이는 사람 키를 넘는 경우가 없고 경계만 구분 짓는 정도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정서를 자아내고 있는 상신리돌담풍경마을 돌담장 길은 걸을수록 정겹고 친근한 정이 느껴진다. 상신리돌담풍경마을의 마을 어귀풍경.


 담장 아래 널어놓은 붉은 고추가 시골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마을은 돌담장 사이로 간간히 회벽을 만날 수 있다.


 회벽에 벽화를 그려 넣은 풍경이 돌담장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벽화와 돌담장이 있는 풍경이다.


7. 계룡산도예촌

계룡산도예촌은 철화분청으로 유명한 조선시대 도요지 인근에 자리 잡고 주로 전통기법을 재연하고자 하는 도예가들이 뜻을 같이하여 하나의 마을을 이룬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작품의 특성은 계룡산 분청사기를 계승 발전시킨다는 취지 아래 철화분청사기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하는 생활용기의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도자기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의 수요에 따라 도자기 빚기 체험공방을 운영 중에 있어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원할 경우 사용자가 디자인한 다기를 도예가의 손에 의해 만들 수도 있다. 계룡산도예촌 들어가는 길목의 상징 벽. 축대 위로 보이는 지붕이 전통가마가 있는 곳이다. 


 옛날 방식 그대로 재현해놓은 전통 가마는 계룡산도예촌이 중시하는 전통자기를 상징한다.


 계룡산도예촌의 공방 중의 한 공방. 계룡산도예촌의 도예가들은 이처럼 독특한 외관의 전시장을 겸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도자전시장 내부는 도예가의 작품이 즐비해 작품감상의 재미가 쏠쏠하다. 


 계룡산도예촌의 도예체험은 전공 도예가가 직접 도예체험을 지도하여 수준 높은 도예체험을 경험 할 수 있다.


 

 

담당부서 :  
관광과
담당자 :  
원효정
연락처 :  
041-840-8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