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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공주 성지순례

  • 작성자전체관리자
  • 작성일2015-06-08 20:10:10
  • 조회수2701

추천 2014 공주로의 성지순례 I 공주로의 6월 여행


천주교 성지와 역사문화유산을 잇는 공주의 천주교 성지순례길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방문기간 중 충남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충남이 세계적 조명을 받고 있다. 올 8월, 5일간 교황의 한국방문 일정 중 이틀에 걸쳐 당진 솔뫼성지와 예산 해미순교성지를 방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교황방문지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공주는 한국천주교 박해 100년사의 중심에 있던 지역으로 충남의 대표성지 중 하나이다. 교황방문에 즈음하여 ‘천주교성지와 함께하는 공주여행’을 추천한다. 황새바위성지와 충청감영 옥터, 중동성당 그리고 장깃대나루를 잇는 성지순례코스다. 한국 천주교회의 초석이 된 황새바위성지와 함께하는 순례 길을 가보자.
1785년 을사박해를 시작으로 100년여의 세월동안 박해를 받아온 한국천주교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황새바위성지는 박해 역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를 기록으로 남긴 성지이자 한국 천주교회의 초석이 된 순교지이다. 실명이 확인된 순교자의 수만 해도 337위,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순교자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공주에서 순교하신 분의 수는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수는 오직 천주님만이 아시느니라.” ‘교회사가 달레(Dallet)’는 말한다.
공주에는 황새바위성지와 함께 도보로 순례를 하면서 천주교 유적을 돌아볼 수 있는 순례길이 있다. 순교자들을 가두거나 처형했던 ‘공주 감영 옥터’와 공주 최조의 성당이자 공주·천안·부여·논산·서천 지역, 충청북도 남쪽 지역 등 충청의 남부를 관할했던 ‘공주중동성당’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 또 황새바위성지에서 중동성당을 잇는 거리만큼 떨어진 거리에 ‘장깃대나루’가 있다. 이 나루는 프랑스 선교사 죠조(1866~1894, 모세) 신부가 순교한 장소로 박해시대가 막을 내린 시기(1876년 개항기) 이후 벌어진 순교사건으로 1894년의 일이다.

 사진1 : 황새바위성지 순교자광장의 순교탑. 형구 뒤에 천상에 이르는 계단이 상징하는 것은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오로지 진리만을 따른 높은 뜻을 기린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사진2 : 공주 감영 옥 터로 추정지(길 왼쪽 불교 간판이 달려있는 건물, 공주시 봉황로 122). 길 오른쪽 끝 십자가가 있는 빨간지붕 건물이 순교현양비가 있는 교동성당이다. 옥 터 추정지는 교동성당에 다다라서 길 건너에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다. 죄수들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었던 충청감영의 옥 터로 박해 때 마다 공주로 끌려온 신자들 중에서 참수형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황새바위성지에서 순교하였고 교수형을 받은 이들은 옥에서 순교했다 한다.


 사진3 : 공주 중동성당. 이 성당은 일제강점기에 착공하여 완공한 것으로, 전통적인 목조건물에서 현대 건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1998년 7월 25일 공주시 시도기념물 제14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공식명칭은 ‘공주중동성당(公州中洞聖堂)’이다.


 사진4 : 장깃대나루성지. 죠조 신부가 뮈텔 주교의 명으로 서울로 피신하던 중 청나라의 패잔병에게 처형된 곳이다. 장깃대 나루는 옛날 사형(死刑)을 집행하던 곳에 깃발이 꽂혀 있던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사진5 : 황새바위성지 전경. 공주 황새바위성지는 공주의 몽마르뜨 언덕이라 불릴 만큼 전망이 좋다. 272년 성(聖)도니와 2명의 제자가 순교한 장소인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처럼 낮은 언덕인데도 주변이 낮은 평지가 발달한 지형이기 때문. 공주의 구 시가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기실 지역 교단에서 황새바위성지를 ‘몽마르뜨 언덕’이라 한 것은 그 어원의 의미를 살리는 것에 더 의미를 둔다. ‘몽(Mont)’은 ‘언덕’이라는 뜻이고 ‘마르트르(martre)’는 ‘순교자’를 뜻한다. 


황새바위성지 순례안내(041-854-6321, FAX 854-6323)
  • 미사 : 오전 11시(단, 월요일 오전 9시)
  • 고해성사 : 순례미사 전·후 30분(순례예약 시 고해 전담사제 배치)
  • 피정 : 하루(식사가능, 예약필요)
  • 함께하는 순례 길 :
    약 3km(황새바위성지→0.8km→공주 감영 옥 터→0.9km→중동성당→1.3km→장깃대나루성지)


찾아가는 길
  • 내비게이션 명칭 및 주소 : 황새바위성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6-1번지
  • 자가용이용 : 천안-논산 대전-당진 고속도로 공주IC 통과 공주IC 삼거리에서 우회전, 직진하면 1.4km 전방 생명과학고교차로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좌회전 후 직진, 250m 전방 사거리에서 우회전 후 금강철교를 건너 계속 직진. 공산성 앞 로타리에서 우회전 후 다리를 건너 좌측이 목적지다.

대중교통이용
  • 고속버스 :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공주행 고속버스 승차->공주 신터미널 하차
  • 시외버스 : 서울 남부터미널 공주행 시외버스 승차->공주 신터미널 하차
  • 시외버스 : 대전 유성터미널 승차->공주 구터미널 하차->도보로 이동(5분 거리)
  • 시내버스 : 공주종합터미널에서 101번이나 125번 시내버스를 이용, 공주중학교 앞 하차.
  • 문의전화는 시민교통(041-854-3163), 택시이용은 고마콜택시(041-858-8282), 공주콜택시(041-856-8811)

천주교 백년 박해의 현장 황새바위 성지

공주는 일찍부터 죄수들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었던 관찰사(후에 충청감사로 바뀜)와 감영이 있었다. 충청도 각 지방 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 잡힌 천주교 주요 신자들에게 ‘사학(천주학)죄인’이란 죄명을 씌우고 사형을 집행했던 곳이다. 외지의 순교자들은 자기가 살던 지방에서 일차적으로 심문과 고문을 받고도 배교를 하지 않았을 때,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어 또다시 지독한 고문과 회유로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고, 그래도 배교를 포기하지 않으면 감사의 명에 떠라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공주는 천주교의 성지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곳이 “황새바위 성지”이다.
황새바위성지는 공주 공산성에서 송산리고분군 가는 방향으로 약 230m 좌측 작은 언덕 전체가 성지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이곳에는 십자가의 길과 빛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당하는 과정을 돌에 새겨 놓아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로 간 길을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객들이 묵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빛의 길은 예수의 부활에서 성령의 강림까지 14처가 마련되어 황새바위광장까지 순례자들이 묵상을 하면서 오를 수 있게 했다. 

황새바위성지 순례의 길로 가는 길목의 예수성심상. 이곳에는 십자가의 길과 명상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황새바위성지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당하는 과정을 돌에 새겨 놓아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로 간 길을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객들이 묵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황새바위성지의 성모동산. 십자가의 길과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는 봉헌할 수 있는 초가 마련되어있다.


십자가의 길 끝에서 바라본 순교자광장 전경. 십자가의 길은 언덕 중턱의 순교자광장으로 이어진다. 순교자광장에는 한국교회 2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며 광장 남쪽으로 무덤경당이 마련되어 있다.

황새바위성지 순교자광장의 순교탑. 형구 뒤에 천상에 이르는 계단이 상징하는 것은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오로지 진리만을 따른 높은 뜻을 기린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순교자광장의 무덤경당. 경당 내부는 순교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으며 중앙의 제단 뒤는 삼각으로 꺽여 진 투명 유리벽으로 처리되어 있고, 그 중앙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이 있다.


광장의 북쪽은 빛돌 12기가 세워져있는데 이 빛돌들은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한다. 광장의 동남쪽의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탑이 순교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순교자광장을 뒤로하고 빛의 길을 걸으면 언덕의 정상 황새바위광장으로 이어진다.


황새바위광장의 순교자의 모후상. “황새바위 성지”라는 지명의 연원은 공주 감영에서 사형이 결정되면 죄수들은 “황새바위”에서 처형당하게 되는데 형장 근처 바위 위에 소나무가 밑으로 늘어진 곳에 황새가 서식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일명 “항쇄바위”하는 말도 전하지만 이는 죄인들이 목에 항쇄(목에 씌우는 칼)를 차고 바위 앞에 끌려가 처형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잘못된 이름이다. 


황새바위광장은 그 중심에 야외성당이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순교한 사람들은 충청도 내포지방의 사도라 불리는 단원 이존창 루도비꼬(1801년 4월 10일 순교)와 성인 손자선 토마스(1866년 순교)를 비롯하여 기록된 숫자만도 337위가 되며, 그 외에도 무명 순교자의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새바위 순교자 337위의 기록을 보면 이곳 공주지역이 1798년 순교자 이도기 바오로로부터 1879년에 옥사한 손 카타리나까지 100여년의 한국 천주교 박해역사 시초부터 끝까지 순교가 있었던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황새바위성지에서 바라본 공산성. 형이 집행될 때에는 건너편에 위치해 있는 공산성에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구경하였고, 참수된 머리는 나무에 매달아 천주학을 경계케 했으며 처형된 시체는 부근 언덕에 매장하거나 그대로 밭에 두어 비가 올 때는 피와 함께 순교자들의 시체가 제민천으로 쓸려가기도 하였다 한다.


순교의 길, 그리고 공주 감영 옥 터

황새바위성지는 인근에 있었던 공주 감영 옥과 무관하지 않다. 충청도 전체를 관할하는 충청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충청감영. 그 감영의 옥에는 충청도 각 지방 뿐 아니라 때로는 타 지역에서 잡힌 천주교인들이 갇혔던 곳이고 참수형이 내려지면 황새바위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황새바위성지에서 감영 옥 터까지의 거리는 약 0.8km, 이 길을 걸으며 순교의 의미를 곱씹어 볼 일이다. 옥 터가 있던 자리 가까이 자리 잡은 교동성당의 순교현양비에 이르는 길은 순교자들이 생의 마지막 길을 갔던 순교의 길이기 때문이다.
죄수들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었던 충청감영. 각 관할지역 포도청에서 일차적으로 심문을 받고 죄가 중할 경우 충청감영으로 이송되어 최종 재판을 받았었다. 박해 때 마다 공주로 끌려온 천주교인들 중 참수형을 받은 신자들은 대부분 황새바위에서 순교하였고, 교수형을 받은 신자들은 옥에서 순교하였다 한다.

공주 감영 옥은 1791년 신해박해 이래 100년 동안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교수형을 받아 순교한 또 하나의 순교성지이다. 충청감영에서 문초를 받으면서 관장이 살을 물어뜯어 신앙을 증거하라고 명하자 주저 없이 제 살을 물어뜯음으로써 배교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한 손자선(1844~1866, 토마스) 성인과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내포 지방의 사도 이존창(李存昌, 1759~1801, 루도비코 곤자가)이 있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도 전 베드로 등 여러 사람이 체포되어 옥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주 감영 옥 터로 가려면 황새바위성지 주차장에서 남쪽으로 길을 잡아 2차선 길을 이용한다.


 공주 감영 옥 터 추정지에 건물이 들어서 있다.길의 끝 길 위에 자동차가 서있는 위치가 교동성당 모퉁이이다.


 길모퉁이에서 바라본 교동성당.


 길모퉁이를 돌아들면 교동성당으로 들어설 수 있다.


성당 마당 가장자리에 순교현양비가 세워져 있다.


찾아가는 길

  • 네비게이션 이용 명칭검색 : 공주 교동성당
  • 도보안내 : 황새바위성지를 나와서 성지 주차장을 끼고돌아 남쪽을 향하면 2차선 도로가 나있는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가면 0.8km 전방 교동성당에 다다를 수 있다.
고난을 반석 삼아 오늘이 있으니.. 공주중동성당

천주교는 프랑스 선교사들과 우리나라에 전파 되면서 선교사업과 함께 교육, 의료사업 등의 활동을 하여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독교가 그랬던 것처럼 천주교도 종교와 함께 독특한 건축물을 들여오는데 우리는 이를 두고 ‘성당’이라 지칭하여 ‘미국식 교회 건축’과 구분 짓고 있다.
공주지역의 성당 건축은 1898년 프랑스 진 베드로 신부가 처음 교당을 세우고 공주에 교리전파를 시작함으로써 비롯된다. 지금의 공주 중동성당의 전신인 셈이다. 가파른 언덕에 위치하여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지어진 지금의 성당건물은 1934년 착공하여1936년에 완공하였는데 본당과 교육관이 남아있다.
100여년 고난의 세월동안 박해는 서울과 지방에서 끊임없이 천주교 신자들의 생명과 재산을 요구 하였고, 순교를 하지 않은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가난과 쫓김과 초조 가운데서 신앙을 위한 투쟁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다.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에 위치하고 있는 수리치골 성지를 비롯하여 17개소에 이르는 공주의 여러 산골은 이들 신자들에게 좋은 은거지가 되었으며, 기록에 의하면 박해시대 때 신자들이 이룬 산골 은거지의 공동체 삶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이상적 삶이었다고 한다.
한 동료가 겁이 나 벌벌 떨면서 “참말이지 나는 어떻게 형벌을 참아낼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지요?” 하고 물을 때 순교자 이도기 바오로는 “나도 고문의 형벌이 몹시 괴롭소. 그러나 천당을 헐값으로 살 수 있나. 고통은 영원한 행복을 살 수 있는 돈일세. 용기를 내어 얼마동안만 더 고통을 참아 받도록 하게.”라고 답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면 가장 혹독한 형별이라도 참아 받기가 쉽지만 만일 주님께서 나를 버리시면 아무리 작은 고통이라도 견디지 못할 것이오. 예수 마리아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니 나는 아무 것도 무섭지 않소.”라고 말했다.
1798년 6월 12일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이도기 바오로의 일화 한 토막이다.
공주중동성당에 간다면 한번쯤 돌이켜 볼 일이다. 그 순교자들의 정신을 반석 삼아 이 아름다운 성당이 비로소 존재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중동 국고개 고갯마루의 길을 사이에 두고 있는 충남역사박물관에서 바라본 중동성당.


공주 시가지 중심부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서 본당 건물 앞에 서면 시가지가 한눈에 바라다 보일만큼 전망이 좋으며, 서북방향으로 황새바위성지가 조망된다.


 성당 건물은 서양 중세기의 고딕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는 매우 단아하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성당은 평면이 약간 변형된 라틴식 십자가형으로, 외관이 붉은 벽돌로 되어있다.


중앙 현관의 꼭대기에는 높은 종탑이 있고, 현관 출입구와 창의 윗부분은 끝이 뾰쪽한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는 중앙에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를 놓고 그 양쪽에 복도를 둔 형식이다.



찾아가는 길

  • 네비게이션 이용 명칭검색 : 공주 중동성당
  • 보도안내 : 교동성당을 나와서 동쪽으로 길을 잡아 공주의 구도심을 향하여 0.3km 이동하면 중동교차로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길을 잡은 다음 200m 가량 이동하면 길 건너에 고갯길이 보인다. 고갯길로 들어서면 고갯마루 오른쪽 언덕에 성당이 보인다. 고갯마루까지의 거리는 250m 가량 된다.
백년박해는 끝났으나 시대의 불운에 스러지다 장깃대나루성지

옛날 사형을 집행하던 장소에 깃발이 꽂혀 있던 데서 나루의 이름이 비롯된 금강변의 장깃대나루는 죠조(1866~1894, 모세) 신부가 동학 농민 전쟁 때 청나라의 패잔병에게 처형된 곳이다. 공주대교가 생기기 전 장깃대나루가 있는 옥룡동에서 강 건너 시목동을 오가던 이 나루로 죠조신부는 끌려와 처형을 당해 순교를 하게 된다. 이때가 1894년 7월 29일 주일날 29세의 젊은 나이였다.
죠조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 1889년 초에 한국에 도착하여 경상도 북부 지방을 맡아 전교 활동을 하다가, 1890년에 부산 지방의 교회 창립 사업을 맡았다. 신자라고는 한 명도 없는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여러 곳의 벽촌과 섬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파한 결과, 3년 후에는 신자를 2,000여 명으로 늘릴 정도로 그는 그칠 줄 모르는 정력과 굳은 신념을 쏱아부어 교우들뿐만이 아니라 이교도들까지도 그를 존경하는 자가 많았다.
1893년 그는 부산에서 전라도로 전임되었고, 그가 머물게 된 배재 마을은 곧 모범적인 마을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관할 구역이 동학(東學) 일파의 습격을 받게 되어 구원을 청하고자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전주를 거쳐 공주 정안에 다다랐을 무렵 그는 청나라군사에게 잡혀 장깃대나루로 끌려와 총살을 당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다.
죠조 신부의 순교는 동학농민운동과 관련이 깊다. 금강을 건너 차령고개를 넘기 위해 공주 정안을 지나던 중 청나라 패잔병(1894년 청일 전쟁에서의 패잔병)들을 만났으나 무사히 지나칠 수 있었다. 그러나 뒤따라오던 동학군의 눈에 띄어 동학 농민군들이 선동하여 청나라 패잔병들이 신부를 체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거기에 동학군의 의도적인 천주교박해는 없었다. 죠조 신부에게 닥친 시대적 불운만 있었을 뿐이다.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군에서 시작된 동학계(東學系) 농민 운동의 ‘동학’은 교조 최제우(崔濟愚)가 풍수 사상과 유(儒), 불(佛), 선(仙)의 교리를 토대로 서학(西學 : 기독교) 에 대항하여 새로운 세계는 내세(來世)가 아니라 현세에 있음을 갈파하여, 당시 재야에 있던 양반 계급은 물론 학정과 가난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퍼져 나가 커다란 종교 세력을 이루게 된 시대적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장깃대나루는 옥룡동 공주대교 아래 금강 변에 위치한다. 옥룡동주민센터에서 공주대교쪽으로 이동하여 다리쪽으로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길을 건너면 현수박게시대 아래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길 모퉁이를 돌아가면 다리 아래 주차장이 보인다. 사진의 검은색 차량이 보이는 오른쪽 공터의 소로로 진입한다.


 순례자들이 내 놓은 희미한 길이 장깃대나루로 안내한다. 별도의 표지판이 없다.


50m 정도 소로를 따라 이동하면 버드나무 서너 그루가 강가에서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게 보인다. 이곳이 장깃대성지이다.


옛 나루터의 자취는 간 데 없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만이 역사의 현장을 적시고 있다.


찾아가는 길

  • 네비게이션 이용 명칭검색 : 공주시 옥룡동주민센터
  • 보도안내 : 공주 중동성당에서 공주대교 쪽으로 길을 잡아 고갯길을 내려가 길의 끝에서 대로를 따라 공주대교방면으로 계속가면 옥룡동주민센터가 나온다. 주민센터에서 대교쪽으로 다시 이동하여 횡단보도를 건너 강변으로 향하면 된다. 거리는 1.3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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