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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물길 금강,공주를 품다

  • 작성자전체관리자
  • 작성일2015-07-30
  • 조회수4860

천리물길 금강, 공주를 품다


태고 적부터 공주 땅을 적시고 흐르면서 수렵, 어로, 채취 등 획득경제에 의존하여 생활하던 구석기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내어준 강. 한반도 인류의 여명기를 공주 땅에 열고, 때론 공주의 자연과 때론 공주의 역사․문화와 어우러지며 지역의 뿌리가 되어온 강. 공주의 중심부를 수놓으며 흐르니 아름답고, 강에 기대어 공주사람들이 문명을 꽃피우니 살기 좋은 곳. 공주에 금강이 흐른다.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에 이르러 창벽을 적시는 것을 시작으로 탄천면 분강리에 이르기까지 32km의 물길로 뻗어나간 공주의 금강은, 창벽, 석장리구석기유적, 공산성, 고마나루 등 공주의 자연을 어루만지고 위기의 백제를 물길로 막아 고구려로부터 구해내기도 하면서 공주의 옛 지명이 된 고마나루를 적시고 흘러 공주의 명승을 두루 탄생시킨다.
금강이 공주의 중심부를 흐르면서 탄생시킨 공주의 명승에 다다르면 어느 곳 하나 금강과 어우러진 주변 풍광을 접하지 않는 곳이 없다. 예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창벽에 오르면 금강을 가로지른 청벽대교를 건너 물길과 함께 뻗어나간 32번국도가 조화롭고, 석장리 구석기유적에 이르면 금강과 어우러진 구석기유적이 신비롭다. 백제 웅진시대를 굳건히 지킨 공산성에 올라 성벽을 걸으면 걸을수록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가경, 금강이 있어 공산성이 존재함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 황포돛배가 떠다니던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 백제의 중심이었다.


연미산에서 맞이한 금강의 일출.


공주 금강의 명물 금강철교. 금강철교와 어우러진 공산성이 금강과 3박자를 이루며 멋진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공산성 동북쪽 성벽 풍경. 공산성은 금강의 풍광을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내비게이션 명칭 및 주소 :
창벽산, 충남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 529-2
석장리구석기유적, 충남 공주시 금벽로 990(석장리동 118)
공산성, 충남 공주시 웅진로 280(금성동 65-3)
고마나루, 충남 공주시 웅진동 440

 

먹을거리(지역번호 041)

창벽산의 맛집으로는 참게요리가 주 메뉴인 청벽가든(854-7383)과 인근에 장어요리로 유명한 어씨네장어(041-852-7372)가 있다. 석장리구석기유적 맛집으로는, 칼국수로 유명한 전통궁중칼국수(858-2397)가 있고, 공산성 인근은 돌쌈밥으로 유명한 고마나루돌쌈밥(857-9999), 추어탕으로 유명한 원조설악추어탕(852-8803), 밤음식 전문인 농가식당(881-8338) 부추해물칼국수로 유명한 공산성부추해물칼국수(856-2913) 등이 있다.


창벽에 올라 마주하는 금강의 비경

전북 장수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이 공주의 창벽산 자락을 적시면서 절경을 이룬 곳 창벽의 꼭대기에 오르면 비경이 펼쳐진다. 수직의 암벽이라서 창벽산 등산로를 따라 절벽위로 오르면, 금강이 공주의 중심부를 향해 흘러가는 절경에 넋을 놓지 않을 수 없다. 등산로 초입부터 절벽 위까지는 우거진 숲으로, 조망이 없어 마냥 오르기만 해야 하지만, 심한 비탈을 땀을 빼며 오르다보면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절벽위의 풍광이 기다리고 있다.


청벽대교를 향해 흘러가는 금강의 좌측 절벽이 창벽이다.


절벽 아래 금강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소나무가 인상적인 창벽의 정상부 풍광


32번 국도가 금강을 가로질러 금강줄기를 따라 물 흐르듯 뻗어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금강 가 석장리구석기유적

한국역사의 시원은 선사시대의 시대별 분류 중 구석기시대로부터 시작 된다. 이 시대 인류의 생활 특징은 수렵, 어로, 채취 등 획득경제에 의존하여 생활하게 되는 데, 주로 강가를 중심으로 그 생활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와 같은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바로 공주석장리의 선사유적이다. 금강이 흐르고 있는 이곳은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고 산의 완만한 경사면이 금강 가에 이르는 아늑한 곳이다. 또 이곳은 해가 뜨고 질 때 까지 항상 볕을 받을 수 있는 양지 바른 곳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 되어, 그때의 생활상을 오늘에 전하게 된다.


사적 제334호로 1990년 10월에 지정된 석장리구석기유적 전경. 구석기시대 당시의 집자리터가 발견된 곳에 막집형태의 주거시설이 재현되어 있다.


수렵과 어로채취를 하면서 살았던 구석기인들에게는 양지바른 강변의 언덕이 거주하기에 알맞았음을 유적은 말해주고 있다.


석장리 구석기유적의 근경.


석장리 구석기유적의 원경


다채로운 금강의 풍광을 간직한 공산성

공산성 북단 금강에 면한 공산성의 산성 길은 포곡식으로, 발달한 산세를 따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만하루와 공북루, 공산정을 잇는 성벽의 경사가 심하다. 임류각 뒷길부터 시작되는 이 구간은 경사가 심해 고도감마저 느낄 수 있어 만하루로 내려선 다음 공북루로 이어진 성벽을 오르고 공북루로 다시 내려선 다음 공산정으로 오르며 성벽과 어우러진 변화무쌍한 금강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금강에서 바라본 공산성. 강에 면한 산성이 산세에 따라 굴곡을 이루고 있다. 좌측이 만하루, 중간이 공북루, 우측 언덕위의 정자가 공산정이다.


공산정에서 바라본 공산성의 북단. 굴곡진 성벽과 그 앞을 도도히 흐르는 금강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임류각의 뒤편으로 돌아나가는 성벽을 걷노라면 마주치는 풍경. 공주의 구도심과 신도심을 잇는 공주대교 너머 천안 논산간 도로가 지나가는 신공주대교가 보인다.



성벽을 따라 임류각을 지나치면 마주할 수 있는 공산성 동북쪽 풍경


백제 웅진의 중심 고마나루

고마나루 남쪽 강변일대를 ‘소정이 펄’, ‘원수대 터’, ‘소정평’ 등으로 부른다. ‘소정이’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 소정방이 나당연합군을 이끌고 웅진성을 공격할 때 진을 친 곳이며, 백제 멸망 후에는 웅진 도독부가 있던 자리라고 전해진다. 해방 전까지도 인가가 있었던 이곳은 강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천여 년을 지나오는 동안 물에 씻기고 모래가 덮여 쌓여서 오직 이름만이 남았었으나 1946년 큰 장마로 그 자리가 드러나 점토(粘土)로 가로 세로 쌓은 건물 기단이 발견됐었다고 하며 전쟁에서 이긴 소정방이 점령지에서 시가지 중앙의 요충에 진을 친 곳이 고마나루였다고 한다.


백제 큰다리에서 바라본 고마나루 일대. 서쪽으로 곧게 흐르던 금강이 연미산에 부딪혀 급히 남쪽으로 물길을 돌리는 곳이다.


고마나루터. 백사장이 발달한 고마나루는 세월의 변천에 따라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마나루 남쪽 하류. 이곳이 소정이 펄, 원수대 터, 소정평 등으로 불렸던 역사의 현장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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