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POPUP POPUP

흥미진진 공주 문화관광

메뉴

공주시 SNS 바로가기

프린트

6월의 역사인물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 : 오강표(1843~1910) , 대한 제국의 의사. 자는 명여. 호는 무이재로 공주 사곡면 월가리 도덕골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많았으며 간재 전공우에게 글을 배운 후 아버지의 상을 당하고 집에 들어앉아 3년간 상복을 풀지 않고 상을 마쳤으며, 편모를 섬기며 세상사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크게 분격해 을사오적을 토벌해야 한다는 상소문 청참조인제적소를 지었다. 이 글을 관찰사 이도재에게 보내 조정에 올리도록 하였지만, 관찰사가 거부하자 공주향교 명륜당에 들어가 대성통곡하고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향교 교임 그를 발견해 목숨을 구하고 은둔하였다. 풀지 않고 상을 마쳤으며, 편모를 섬기며 세상사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1907년 고종황제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사법권이 일제에 박탈당하고, 1910년 한일합방조약 체결로 국토와 주권을 완전히 빼앗기는 상황이 알려지면서 오강표는 절명사를 지어 망국의 울분을 통곡하고 죽기를 각오하였다. 1910년 11월,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던 날, 그는 '망국의 노예가 되어 따뜻하고 배부른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며 얇은 옷 한 벌을 걸치고, 소매 속에 유서를 넣은 채 공주향교 명륜당으로 들어가 강학루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죽기 전에 남긴 절명사에는 '비록 살아서 조선 땅을 되찾는 것은 어렵다하나 일본사람이 되는 것을 어찌 볼 수 있는 일이겠느냐!'라는 애국 충정의 마음이 쓰여있었다. '흰머리에 붉은 충성은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고 결심한 뒤 은둔이 아닌 자결의 길을 택한 그의 모습은 나라를 위하는 충절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1962년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